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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는 바담풍 해도 너희들은 바람풍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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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담풍 해도 너희들은 바람풍 해라!
이성연 애터미경제연구소장 現) 애터미(주) 경제연구소 소장 1989 경북대학교 경제학 박사 취득 1986 보국훈장 삼일장 수상 1982 미국 브라운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취득 1976~2010 육군사관학교 및 3사관학교 교수 역임 1976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72 육군사관학교 졸업
옛날 어떤 서당의 훈장님이 혀가 짧아 ‘ㄹ’ 발음이 ‘ㄷ’ 발음으로 되었다. 예를 들면 ‘바람’이라는 말을 ‘바담’으로 발음하는 것이다. 옛날에 사전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어서 훈장님이 한자 하나하나의 훈과 음을 가르쳐야 하는데, 문제는 바람풍(風) 자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훈장님은 자기 머리로는 ‘바람풍’이라고 생각하면서 발음을 해도 학동들이 듣기에는 ‘바담풍’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학동들은 ‘風’ 자를 ‘바담풍’이라고 앵무새처럼 따라서 했다. 그러자 훈장님은 ‘바담풍’이 아니라 ‘바담풍’이라고 재차 가르쳤다. 그러나 역시 학동들은 그저 ‘바담풍’이라고 쫑알거렸다. 화가 난 훈장님은 “나는 바담풍 해도 너희들은 바담풍 하라”고 역정을 냈다. 학동들은 왜 훈장님이 역정을 내는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신문이나 잡지의 칼럼 제목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말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잘 실천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은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즉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거나 또는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전형은 전쟁이 발발했을 때 사회 지도층이 앞장서서 전장에 나가고 스스로 전쟁 부담을 짊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서구사회가 안정되고 선진화된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개념은 로마에서 유래되었다. 초기 로마의 왕과 귀족들은 솔선수범하여 절제된 생활을 했으며, 전쟁이 났을 때에는 앞장서서 전쟁터에 나갔다. 로마 지배계층의 이런 행동이 일개 도시국가에 불과하였던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세계 대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지중해의 제해권을 놓고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Carthage)와 충돌한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the Punic Wars, BC 264-146) 때, 로마의 귀족들은 평민보다 앞서 전장에 나갔으며, 전쟁세를 신설하여 재산이 많은 원로원 의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냈다. 전쟁이 오래 지속되어 국고가 바닥나자 전시국채를 발행, 원로원 의원들 및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과 부자들에게만 구입토록하여 평민들이 부담을 지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이와 같이 귀족들과 부자들이 앞장서서 전장에 나가 목숨을 바치고, 스스로 많은 세금을 내 전쟁 부담을 지는 것을 보고 평민들도 다투어 전장에 나가고 자발적으로 세금을 냈다. 이러한 로마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이 밑바탕이 되어 로마는 포에니 전쟁에서 명장 한니발(Hannibal)을 물리치고 카르타고를 정복하였으며,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점령하여 세계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제정(帝政) 이후 권력이 개인에게 집중되고 지도층이 도덕적으로 해이해지면서 로마는 역동성을 잃고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로마의 귀족들과 사회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 병역이행을 꺼리게 되었고 노예와 용병에게 국방을 맡기면서 로마는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상류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제와 국민들의 상무정신(尙武精神)이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였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19세기에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大英帝國)을 건설하였던 영국의 힘도 역시 영국 귀족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이었다.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에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찰스 왕세자에 이어 왕위 계승 서열 두 번째였던 앤드류 왕자가 가장 위험한 해군 헬기 조종사로 참전한 것이 좋은 예이다. 당시 영국 상원은 앤드류 왕자가 왕위 계승 서열 두 번째 임을 이유로 들어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앤드류 왕자의 참전을 허가하지 말도록 진언하였으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참전하도록 명령하였다. 또 최근에는 왕위 계승 서열 세 번째인 찰스 왕세자의 둘째 아들인 해리 왕자가 위험한 아프가니스탄 전선에 파견되어근무한 바 있다.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등 중국 땅의 거대한 제국들과의 전쟁에서 연달아 그들을 격파하고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 고구려의 상무정신과, 삼국을 통일하고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낸 신라의 화랑도 정신도 우리가 반드시 본받아야할 고귀한 유산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 3국 시대와 그 뒤를 이은 고려시대에도 전쟁터에 앞장서서 나가는 장수들은 귀족 등 사회 지도층이었다.

그러나 조선왕조에 들어와 우리민족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전통과 상무정신이 크게 약화되어 버렸다. 사회의 상층부를 구성하면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양반사대부(兩班士大夫)들은 군역(軍役)이 면제되었고, 각종 공공 부역(賦役)도 부담하지 않았다. 또한 왕을 비롯한 양반사대부 계층은 외적이 침략하면 도망갈 궁리부터 먼저 하였다.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은 무인들과 힘없는 백성들이었다. 그러나 외적을 몰아내고 전쟁이 끝나면 멀리 도망갔던 왕과 양반사대부들이 돌아와 다시 사회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호의호식하면서 온갖 횡포를 다 부렸다. 한마디로 조선의 양반사대부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조선왕조에서 사회지도층의 이러한 행태가 나라를 망하게 한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다. 현재 한국은 선진국으로 도약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대한 문턱에 서있다.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국민적 의무를 회피하고 온갖 편법과 비리를 저지르면서 국들에게만 정신 바짝 차리고 다시 뛰자고 하면 “나는 바담풍이라고 해도 너희들은 바람풍이라고 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국민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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