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혼자’가 아닌 ‘함께’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혼자’가 아닌 ‘함께’
김성일 임페리얼마스터
역사적인 폭염의 기세가 여전한 8월 중순, 지난 6월 애터미의 최고직급에 오르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김성일 임페리얼마스터를 만났다. 그처럼 성공하고 싶고, 성공 비결을 알고 싶은 많은 사업자들을 대신해 ‘성공의 비결은 뭔지?’, ‘가장 기억에 남는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지?’ 같은 조금은 뻔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깊은 생각에 빠진 그는 한참 후에야 자신의 말을 곱씹듯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생을 바꾸고 싶었어요”
생애 가장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김성일 임페리얼마스터는 가장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2백만원을 버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 그는 보통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부와 명예를 갖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싶어서 애터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가 그토록 바꾸고 싶었던 과거의 모습은 한마디로 ‘실패한 인생’이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시작한 사업이 실패하면서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생계가 막막해 딱 일주일만 하자며 시작한 대리기사 일은 4년을 넘겨 5년을 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애터미를 처음 만나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과거 그의 실패 과정을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란 쉽지 않았다. ‘한달에 2백만원만 벌면 가장 노릇은 하겠구나’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2백만원이면 평생 힘들게 농사를 지으시는 어머니가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두 아들에게 최소한의 아버지 노릇은 할 수 있겠다 싶었죠. 하지만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이더군요.
제심합력(齊心合力),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결심으로 집이 있는 전주를 떠나 마산으로 향했다. 마산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과 똑같은 꿈을 가진 파트너를 찾는 것이었다. “저처럼 인생을 바꾸고 싶은 파트너를 만나고 싶었어요. 그렇게 만난 이가 지금의 홍연구 크라운마스터입니다.” 애터미에서 한번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실패의 원인 중 하나가 힘을 모을 수 있는 파트너를 찾지 못한데 있었음을 절감한 그는 제심합력(齊心合力)할 파트너만 있다면 소비자를 만드는 속도는 훨씬 빨라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파트너를 찾던 차에 홍연구 크라운마스터를 만났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행색이 어찌나 초라한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란 게 느껴졌어요. 그때 제가 평생 처음으로 ‘책임지겠다’는 말을 했어요.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질 테니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약속만 잡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날부로 의기투합한 둘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전국 어디든 달려갔다. 지인으로부터 빌린 중고자동차를 타고 1년에 10만Km를 달렸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125회 정도를 왕복한 셈. 당장 들어오는 돈도 없이 전국을 다니니 기름값, 밥값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날은 파트너들과 식사 후 밥값을 내야 하는데 가진 돈이 2만원이 전부라 눈물을 쏟기도 했다. 참 어렵던 시절, ‘희망이 없을 때 유일한 희망은 희망을 갖는 것’이란 박한길 회장의 말을 되새기며 희망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석 달 만에 대형버스 한 대를 빌려 원데이 세미나에 가는 날의 기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혼자 할 수 없는 일도 둘이면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깨달은 그는 회원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애터미 사업은 혼자만 잘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에요. 특히 스폰서의 경우 파트너의 일이 곧 나의 일이고, 파트너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나는 네가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말은 하지만 노력은 안하는 것 같아요. 서로 책임질 생각을 안하는 거죠.” 결국 내 그룹에서 제심합력이 안되는데 무슨 큰 일을 도모할 수 있겠느냐며 일침을 놓는다.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업을 하는 게 올바른지 모르는 것 같다”며, “스폰서와 파트너가 손을 맞잡고 같이 성장하는 경험을 꼭 해 봤으면 좋겠다”고 조언한다.
그날부로 의기투합한 둘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전국 어디든 달려갔다. 지인으로부터 빌린 중고자동차를 타고 1년에 10만Km를 달렸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125회 정도를 왕복한 셈. 당장 들어오는 돈도 없이 전국을 다니니 기름값, 밥값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날은 파트너들과 식사 후 밥값을 내야 하는데 가진 돈이 2만원이 전부라 눈물을 쏟기도 했다. 참 어렵던 시절, ‘희망이 없을 때 유일한 희망은 희망을 갖는 것’이란 박한길 회장의 말을 되새기며 희망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석 달 만에 대형버스 한 대를 빌려 원데이 세미나에 가는 날의 기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혼자 할 수 없는 일도 둘이면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깨달은 그는 회원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애터미 사업은 혼자만 잘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에요. 특히 스폰서의 경우 파트너의 일이 곧 나의 일이고, 파트너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나는 네가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말은 하지만 노력은 안하는 것 같아요. 서로 책임질 생각을 안하는 거죠.” 결국 내 그룹에서 제심합력이 안되는데 무슨 큰 일을 도모할 수 있겠느냐며 일침을 놓는다.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업을 하는 게 올바른지 모르는 것 같다”며, “스폰서와 파트너가 손을 맞잡고 같이 성장하는 경험을 꼭 해 봤으면 좋겠다”고 조언한다.
부끄럽지 않은 리더가 되기 위한 고민
김성일 임페리얼마스터는 스스로 항상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직급이 오르고 수입이 늘어나는 만큼 인격과 역량의 크기도 올라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고백한다. “임페리얼마스터 승급식을 하는데 속으로는 창피한 생각이들었어요. 크라운마스터 승급식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때마다 항상 생각하는 게 있어요. 하나님이 이토록 부족함이 많은 저를 여기까지 끌어올리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 고민하게 됩니다.” 결론은 자신이 받은 사랑을 사회와 나누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었다. 오래전 마산으로 가는 차 안에서 ‘만일 10억원의 돈이 생긴다면 하나님을 위해 모두 다 쓰겠노라’며 간절히 기도했다는 김성일 임페리어마스터는 이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승급축하금으로 받은 10억원을 기독교 학교를 짓는데 쓸 생각으로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다.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배워나가는 학교. 즉 성경에 근거한 시스템을 가진 학교를 구상 중입니다. 필리핀에 부지를 마련해 놓았는데 개교 시기는 내후년쯤이 될 것 같습니다.” 김성일 임페리얼마스터의 롤모델은 박한길 회장이다. 이번 학교 설립 건도 교육적으로 열악한 지역에 100여 개의 학교를 짓겠다는 박한길 회장의 뜻을 따르자는 취지였다. ‘애터미의 리더는 사회적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박한길 회장의 경영철학을 실현하고 있는 김성일 임페리얼마스터.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현재의 리더, 그리고 앞으로 리더가 될 회원들에게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진정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가 스스로 물어보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정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가 스스로 물어보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