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브랜드 마케터에서 애터미 마케터로
브랜드 마케터에서 애터미 마케터로
부업 찾다 만나 ‘평생 직업’으로...돈, 건강 걱정 없이 가족과 행복하게 살 것
나는 결혼 전 다양한 기업들의 온오프라인 마케팅의 기획 및 실무를 통해 실력을 쌓아 왔다. 네 군데의 회사를 거치며 온오프라인 마케팅에서부터 SNS 마케팅, 디지 털 기기 및 건강식품 브랜딩까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습득했다. 물론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마케터로써의 실력과 경험을 믿고 소셜 커머스 사업을 창업했지만 참담 한 실패로 끝났으니까.
이후 결혼을 하고 주부가 되면서 매번 일정하지 않았던 생활비로 불안한 마음에 돈 버는 방법을 무던히도 찾아 보았다. 그러나 만삭의 몸으로 보험사 자격을 취득한 노 력에도 불구하고 버는 돈은 그저 용돈 수준에 지나지 않 았다. 마케터였던 경력을 살려 재능판매도 해보고, 돈 버는 어플이나 각종 부업거리들을 찾아 헤맸다. 그 과정에 서 깨달은 것은 어떤 부업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소득 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터넷은 온통 나처럼 부업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현혹하는 사기로 넘쳐났다.
그렇게 괜찮은 부업거리를 찾으며 답답한 한숨만 쉬 며 보내던 어느 날, 순간 머릿속에 애터미가 떠올랐다. 2013년인가 그때쯤 길을 걷다가 애터미 교육센터 간판 을 본 기억이 났던 것이다. 마케터로서 한국수력원자력 관련 업무를 진행했던 적이 있었기에 한국원자력연구 원이 정부기관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런 정부기관에서 개발한 제품을 애터미라는 네트워크마케팅 회사에서 유통한다는 것이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당시의 애터미는 제품 디자인이나 홈페이지 등에서 마케터로서의 덕력이 높았던 내 눈높이에는 미치지 못했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는 말처럼, 비록 촌스런 디자인 과 다소 뒤처진 홈페이지의 기억이 있었지만 찬밥 더운 밥 가릴 계제는 아니었다. 부랴부랴 검색해서 찾아들어 간 애터미의 홈페이지는 아주 약간의 선입견 디스카운 트를 고려해도 실로 괄목상대(刮目相對)할 수준이 되어 있었다. 나는 조금은 달달한 기분으로 회원가입을 했고, 제품을 구매했다.
이렇게 소소하게 시작한 애터미 사업이지만 시간이 흐 르면서 제품에 빠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가 사용해본 애터미의 제품은 그 어떤 브랜드와도 달랐다. 어릴 적부 터 남달리 허약해서 안 먹어본 보약이 없을 정도로 한약 을 많이 먹어보았고, 심한 아토피에 누구나 즐겨먹는 라 면마저도 금기음식으로 정해야 했다. 어디 이뿐이랴? 유분이 넘쳐흐르는 얼굴 덕에 화장 좀 하라는 소리를 매 번 들었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애터미 화장품으로 조금 씩 좋아져가는 얼굴과 헤모힘을 통해 늘어가는 체력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저질체력이긴 하지만 이 제 헤모힘과 함께라면 어디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직도 네트워크마케팅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힘들었다. 그럼에도 한창 젊은 시절, 유통업계를 오시(傲視)하듯 휘젓고 다니는 브랜드 마케터였던 내가 애터미 마케터가 된 이유는 다름 아니다. 애터미는 내가 마케팅을 해도 될 가치가 충분히 있는 회사이고, 나 자 신 스스로가 매일매일 감탄하며 애터미 제품을 사용하 고 있는 명실상부한 ‘찐’ 애용자이기 때문이다. 애터미의 ‘비전’은 바로 애터미의 ‘제품’이다. 정말 제대 로 애터미 제품을 사용해본 사람들이라면 애터미 제품 의 진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또한 그랬 듯이 대충 한 두어 번 써보고는 그 진가를 알 수는 없다. 브랜드 마케터였던 내가 애터미 마케터가 된 것은 애터 미 제품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서다. 내가 성공하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는 애터미의 신제품을 가장 먼저 사 용해 보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애터미 제품들을 돈 걱 정 없이 맘껏 사용하고 싶어서다.
박한길 회장님의 스피치는 애터미 마케터로서 마음에새겨야할 금과옥조(金科玉條)였다. 특히, 회장님의 “애 터미에서도 좋지 않은 제품을 판매한다면 그런 제품은 사지 말라. 그런 애터미는 없어져야 한다.”는 말씀은 애 터미에 대한 나의 신뢰를 더할 수 없이 견고하게 만들었 다. 이런 마인드를 갖춘 CEO가 경영하는 애터미라면 그 모든 제품을 믿고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성연 박사님의 인문학 강의도 좋았다. 특히, 박사님의 “머리 공부, 몸 공부, 마음공부 세 가지가 모두 이루어져야 된다.”는 말씀은 마음에 와 닿았었다. 그래 서 나는 이 세 가지 공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애터미 사업을 해야 애터미 마케터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 한다. 나에게 있어 애터미라는 존재는 부업이 아니라 ‘평생 직 업’ 그 자체다. 애터미 제품을 애용하게 되면서 ‘윙스’라는 닉네임으로 운영하는 개인 블로그에 애터미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애터미 제품들과 애터미와 관련된 스토리 들을 하나씩 콘텐츠 로 만들어 게시하고 있다. 물론 이로 인해 돈을 벌기 위 해 애터미 제품을 알리고 있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이 상하게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도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자칭 애터미 마케터로 살아가고 있다. 나의 종착점은 임페리얼마스터다. 그러 나 그 전에, 애터미의 진정한 성공자인 오토판매사를 가 장 많이 양성한 애터미 사업자로 성장하는 것이 꿈이다. 다함께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애터미 사업이 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애터미 마케터 로서 나의 인생 목표는 돈 걱정, 건강 걱정 없이 가족과 함께 현재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1번이다.
이후 결혼을 하고 주부가 되면서 매번 일정하지 않았던 생활비로 불안한 마음에 돈 버는 방법을 무던히도 찾아 보았다. 그러나 만삭의 몸으로 보험사 자격을 취득한 노 력에도 불구하고 버는 돈은 그저 용돈 수준에 지나지 않 았다. 마케터였던 경력을 살려 재능판매도 해보고, 돈 버는 어플이나 각종 부업거리들을 찾아 헤맸다. 그 과정에 서 깨달은 것은 어떤 부업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소득 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터넷은 온통 나처럼 부업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현혹하는 사기로 넘쳐났다.
그렇게 괜찮은 부업거리를 찾으며 답답한 한숨만 쉬 며 보내던 어느 날, 순간 머릿속에 애터미가 떠올랐다. 2013년인가 그때쯤 길을 걷다가 애터미 교육센터 간판 을 본 기억이 났던 것이다. 마케터로서 한국수력원자력 관련 업무를 진행했던 적이 있었기에 한국원자력연구 원이 정부기관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런 정부기관에서 개발한 제품을 애터미라는 네트워크마케팅 회사에서 유통한다는 것이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당시의 애터미는 제품 디자인이나 홈페이지 등에서 마케터로서의 덕력이 높았던 내 눈높이에는 미치지 못했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는 말처럼, 비록 촌스런 디자인 과 다소 뒤처진 홈페이지의 기억이 있었지만 찬밥 더운 밥 가릴 계제는 아니었다. 부랴부랴 검색해서 찾아들어 간 애터미의 홈페이지는 아주 약간의 선입견 디스카운 트를 고려해도 실로 괄목상대(刮目相對)할 수준이 되어 있었다. 나는 조금은 달달한 기분으로 회원가입을 했고, 제품을 구매했다.
이렇게 소소하게 시작한 애터미 사업이지만 시간이 흐 르면서 제품에 빠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가 사용해본 애터미의 제품은 그 어떤 브랜드와도 달랐다. 어릴 적부 터 남달리 허약해서 안 먹어본 보약이 없을 정도로 한약 을 많이 먹어보았고, 심한 아토피에 누구나 즐겨먹는 라 면마저도 금기음식으로 정해야 했다. 어디 이뿐이랴? 유분이 넘쳐흐르는 얼굴 덕에 화장 좀 하라는 소리를 매 번 들었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애터미 화장품으로 조금 씩 좋아져가는 얼굴과 헤모힘을 통해 늘어가는 체력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저질체력이긴 하지만 이 제 헤모힘과 함께라면 어디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직도 네트워크마케팅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힘들었다. 그럼에도 한창 젊은 시절, 유통업계를 오시(傲視)하듯 휘젓고 다니는 브랜드 마케터였던 내가 애터미 마케터가 된 이유는 다름 아니다. 애터미는 내가 마케팅을 해도 될 가치가 충분히 있는 회사이고, 나 자 신 스스로가 매일매일 감탄하며 애터미 제품을 사용하 고 있는 명실상부한 ‘찐’ 애용자이기 때문이다. 애터미의 ‘비전’은 바로 애터미의 ‘제품’이다. 정말 제대 로 애터미 제품을 사용해본 사람들이라면 애터미 제품 의 진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또한 그랬 듯이 대충 한 두어 번 써보고는 그 진가를 알 수는 없다. 브랜드 마케터였던 내가 애터미 마케터가 된 것은 애터 미 제품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서다. 내가 성공하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는 애터미의 신제품을 가장 먼저 사 용해 보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애터미 제품들을 돈 걱 정 없이 맘껏 사용하고 싶어서다.
박한길 회장님의 스피치는 애터미 마케터로서 마음에새겨야할 금과옥조(金科玉條)였다. 특히, 회장님의 “애 터미에서도 좋지 않은 제품을 판매한다면 그런 제품은 사지 말라. 그런 애터미는 없어져야 한다.”는 말씀은 애 터미에 대한 나의 신뢰를 더할 수 없이 견고하게 만들었 다. 이런 마인드를 갖춘 CEO가 경영하는 애터미라면 그 모든 제품을 믿고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성연 박사님의 인문학 강의도 좋았다. 특히, 박사님의 “머리 공부, 몸 공부, 마음공부 세 가지가 모두 이루어져야 된다.”는 말씀은 마음에 와 닿았었다. 그래 서 나는 이 세 가지 공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애터미 사업을 해야 애터미 마케터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 한다. 나에게 있어 애터미라는 존재는 부업이 아니라 ‘평생 직 업’ 그 자체다. 애터미 제품을 애용하게 되면서 ‘윙스’라는 닉네임으로 운영하는 개인 블로그에 애터미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애터미 제품들과 애터미와 관련된 스토리 들을 하나씩 콘텐츠 로 만들어 게시하고 있다. 물론 이로 인해 돈을 벌기 위 해 애터미 제품을 알리고 있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이 상하게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도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자칭 애터미 마케터로 살아가고 있다. 나의 종착점은 임페리얼마스터다. 그러 나 그 전에, 애터미의 진정한 성공자인 오토판매사를 가 장 많이 양성한 애터미 사업자로 성장하는 것이 꿈이다. 다함께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애터미 사업이 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애터미 마케터 로서 나의 인생 목표는 돈 걱정, 건강 걱정 없이 가족과 함께 현재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1번이다.
백승희 세일즈마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