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들 살리러 온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찾다
아들 살리러 온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찾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블라디미르 케게이 & 미카 부부
블라디미르 케게이는 카자흐스탄에서 10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다. 아내 미카는 영어교사로 일하면서 프리랜서 재즈 가수로 지역 밴드에서 활동했고 줌바 강사로도 일했다. 두 사람은 열심히 일했지만 늘 부족했고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중 부부는 소중한 첫 아들을 얻게 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심각한 병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블라디미르 케게이 & 미카
로열마스터
아들 치료 위해 한국행을 결심하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아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2016년 한국행을 결심했다. 한국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블라디미르가 프리랜서 강사로 러시아어를 가르치면서 버는 돈으로는 아이의 병원비를 대고 가족이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한국 물가가 카자흐스탄에 비해 3~5배 정도 비쌉니다. 슈퍼마켓에 들어갈 때마다 가격표를 보면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을 끊임없이 계산하면서 고민해야 했죠. 세일 상품이나 유통기간 만료 직전에 할인 판매하는 상품을 살 수밖에 없었죠.”
블라디미르는 한국 생활 초기의 고민과 좌절을 떠올렸다. 하지만 부부의 염원과 달리 한국에 온지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말았다. 한국에 온 목적이 사라졌기 때문에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한국에 남기로 했다. 이곳에 자신들만을 위한 뭔가가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부부는 다시 아이를 가졌고 예쁜 딸을 얻었다.
2018년이 되자 블라디미르는 러시아어 정식 교사 자리를 얻어 월 2백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소고기를 덥석 집을 정도로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지만 새롭게 태어난 딸을 위해 가끔씩 빵과 과일을 사줄 수 있을 정도는 됐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쉬는 날 없이 매일 일을 하면서 서서히 지쳐갔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블라디미르는 한국 생활 초기의 고민과 좌절을 떠올렸다. 하지만 부부의 염원과 달리 한국에 온지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말았다. 한국에 온 목적이 사라졌기 때문에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한국에 남기로 했다. 이곳에 자신들만을 위한 뭔가가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부부는 다시 아이를 가졌고 예쁜 딸을 얻었다.
2018년이 되자 블라디미르는 러시아어 정식 교사 자리를 얻어 월 2백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소고기를 덥석 집을 정도로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지만 새롭게 태어난 딸을 위해 가끔씩 빵과 과일을 사줄 수 있을 정도는 됐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쉬는 날 없이 매일 일을 하면서 서서히 지쳐갔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러시아어 강사 포기하고 애터미에 전념
2018년 봄, 서울 글로벌센터에서 한국어 수업을 받던 중 미래의 스폰서를 만났다. 함께 수업을 받던 한 여성이 있었는데 늘 바빠 보였고 수업에 늦거나 빠지는 일도 많았다. 물어보니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 한국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그로부터 반년 쯤 지난 그해 가을, 블라디미르는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을 자신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 일이 다단계판매라는 것을 듣고 블라디미르는 그것이 자신들을 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물론 아내 역시 내성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물건을 소개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단계 판매의 운영 방식 일부에 대해서도 불신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애터미 커피와 치약, 칫솔 등을 몇 개 선물로 받아서 사용해 보고는 바로 느낌이 왔다. 자신이 사용해 오던 제품에 비해 품질이 훨씬 좋으면서도 가격이 쌌기 때문이었다. 한 살 된 딸을 키우고 있던 아내가 부업으로 충분히 해 볼만 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내 미카는 딸을 돌보며 SNS에 애터미 상품을 올려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고 그의 어머니를 파트너로 등록시켰다. 블라디미르가 퇴근 후 늦게 집에 돌아올 때면 아내는 저녁을 차려주기보다는 스마트폰을 붙잡고 SNS에 올릴 콘텐츠를 만드는데 정신이 없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럴 때면 조용히 부엌으로 가서 애터미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도 애터미에 대한 믿음은 더욱 높아졌다.애터미 사업을 시작하고 난 후 아내가 첫 수당으로 6만 8천 원을 받았을 때 부부는 뛸 듯이 기뻤다. 블라디미르는 아내가 애터미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를 돕고 싶었다. 그는 모든 러시아어 수업을 중단하고 애터미 사업에 풀타임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일이 다단계판매라는 것을 듣고 블라디미르는 그것이 자신들을 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물론 아내 역시 내성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물건을 소개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단계 판매의 운영 방식 일부에 대해서도 불신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애터미 커피와 치약, 칫솔 등을 몇 개 선물로 받아서 사용해 보고는 바로 느낌이 왔다. 자신이 사용해 오던 제품에 비해 품질이 훨씬 좋으면서도 가격이 쌌기 때문이었다. 한 살 된 딸을 키우고 있던 아내가 부업으로 충분히 해 볼만 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내 미카는 딸을 돌보며 SNS에 애터미 상품을 올려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고 그의 어머니를 파트너로 등록시켰다. 블라디미르가 퇴근 후 늦게 집에 돌아올 때면 아내는 저녁을 차려주기보다는 스마트폰을 붙잡고 SNS에 올릴 콘텐츠를 만드는데 정신이 없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럴 때면 조용히 부엌으로 가서 애터미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도 애터미에 대한 믿음은 더욱 높아졌다.애터미 사업을 시작하고 난 후 아내가 첫 수당으로 6만 8천 원을 받았을 때 부부는 뛸 듯이 기뻤다. 블라디미르는 아내가 애터미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를 돕고 싶었다. 그는 모든 러시아어 수업을 중단하고 애터미 사업에 풀타임으로 뛰어들었다.
카자흐스탄 통해 전 세계로 향하다
애터미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카자흐스탄어로 된 자료가 거의 없었다. 두 사람은 직접 자신들의 모국어로 된 자료를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만든 자료를 갖고 3개월 동안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인근 3개국, 15개 도시를 돌면서 40여 회의 세미나를 개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오프라인 활동에 타격을 받았지만 빠르게 온라인 리더십 과정으로 전환해 3개월 만에 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교육시켰다. 그 과정을 마친 사람들 중 절반이 세일즈 마스터가 되었고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부부는 지금 로열마스터가 되어 로열리더스 클럽에 가입했다.
“우리는 가장 먼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맞는 상품을 추천합니다. 결국 그 사람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제품,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이 최고의 제품이죠.”
잇몸 통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칫솔과 치약을 소개하고 코로나로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헤모힘이나 메가 비타민C 및 알래스카 오메가3를 권하는 식이다.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을 제안하는 것, 그것이 이 부부가 애터미 사업을 하는 방식이다.애터미를 처음 시작할 때 블라디미르의 은행계좌에는 5만 원도 채 들어 있지 않았고 1천만 원 정도의 아파트 보증금이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2억 원이 넘는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파트너를 지원하거나 필요할 때마다 전 세계를 방문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지난해 10월 애터미 카자흐스탄 법인이 생기면서 두 사람의 사업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 전까지는 러시아를 통해야만 했지만 이제 카자흐스탄에서도 직접 애터미 제품을 공급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한국과 카자흐스탄을 오가는 것은 물론 러시아, 키르키스스탄, 튀르키예, 캐나다와 유럽 각국을 오가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블라디미르와 미카 부부는 애터미 사업을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묘사했다.
“애터미는 사랑에 관한 일입니다. 제품을 사랑하고, 자신과 파트너를 사랑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자신 안에 더 많은 사랑을 가질수록 애터미에서 더 큰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맞는 상품을 추천합니다. 결국 그 사람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제품,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이 최고의 제품이죠.”
잇몸 통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칫솔과 치약을 소개하고 코로나로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헤모힘이나 메가 비타민C 및 알래스카 오메가3를 권하는 식이다.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을 제안하는 것, 그것이 이 부부가 애터미 사업을 하는 방식이다.애터미를 처음 시작할 때 블라디미르의 은행계좌에는 5만 원도 채 들어 있지 않았고 1천만 원 정도의 아파트 보증금이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2억 원이 넘는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파트너를 지원하거나 필요할 때마다 전 세계를 방문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지난해 10월 애터미 카자흐스탄 법인이 생기면서 두 사람의 사업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 전까지는 러시아를 통해야만 했지만 이제 카자흐스탄에서도 직접 애터미 제품을 공급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한국과 카자흐스탄을 오가는 것은 물론 러시아, 키르키스스탄, 튀르키예, 캐나다와 유럽 각국을 오가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블라디미르와 미카 부부는 애터미 사업을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묘사했다.
“애터미는 사랑에 관한 일입니다. 제품을 사랑하고, 자신과 파트너를 사랑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자신 안에 더 많은 사랑을 가질수록 애터미에서 더 큰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