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과 삶의 균형을 돕는 워라밸 큐레이터 임현정
일과 삶의 균형을 돕는 워라밸 큐레이터 임현정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라고 불리었던 그때, 내 몸보다도 큰 가방을 메고 1시간 30분을 걸어야만 학교에 갈 수 있는 아주 깡 시골에서 자랐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한 마리밖에 없는 소가 뒷산에서 풀을 뜯어먹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그때의 우리 집 밥상은 늘 김치와 나물, 된장찌개가 전부였다. 스무 살에 처음 식당에서 먹었던 삼겹살의 맛을 아직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부모님께서는 늘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바르게 사셨다. 집이 너무 시골인지라 고등학교때부터 자취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내 스무 살 뒤에는 항상 존경하는 부모님이라는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9년 대학교에 입학했다. 전공은 기계설계였고 1학년 전체 여학생은 나를 포함한 단 6명뿐이었다. 그렇게 남자들 사이에서 경쟁하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부품 설계를 시작으로 기계 설계, 프레스 설계, 레이저 설계까지 약 10년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독립적인 생활을 했던 나는 막연하게 미래에 잘 살 수 있을 거란 내 안의 알 수 없는 확신과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무언가 이뤄낼 것 같던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남들과 비슷하게 평생을 함께할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으면서 경력이 단절되고 육아에 매진하게 되었다. 육아를 하면서도 미래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을 때쯤 우연하게 애터미를 만나게 되었다.
네트워크 제품은 사용해 본적도 없던 내게 애터미 제품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제품의 우수성을 알기보다 내가 쓸 수 있는 가격대인 것이 좋았기 때문이었고 우연히 간 세미나에서 보상 플랜을 처음 듣고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다단계의 고정관념을 깨어주었기 때문이다. 상한선이 있다는 것이 내게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상한선이 있다는 건 누구 한 사람만이 소득을 독식하지 않는다는 말이었고 일에 끝이 있기에 시간의 자유,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회사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서 합리적인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온갖 인터넷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하며 약 6개월 정도 검증의 시간을 거치면서 의심이 깨지고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 일을 제대로 한 번 해봐야겠다!”
어쩌면 이 일이 내 삶을 바꿔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 일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네트워크마케팅의 경험도 영업의 경험도 전혀 없던 나는 내가 직접 알아보고 검증한 회사, 제품, 경영자의 대한 믿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은 못해도 나는 무조건 이 사업을 성공해 내고야 말겠다는 열정 하나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약 10년 가까이 경기도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울산으로 내려온 나는 아는 지인이 열명도 채 되지 않았다. 어느 장사나 매출이 있어야 소득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데 나는 제품을 전달할 만한 지인이 없었다. 만날 사람이 없으니 매출도 없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목표가 있어야 성장한다는 성공자분들의 말씀을 듣고 방법을 생각했어야 했다.
“그래, 개척 영업을 해야겠구나.”
이른 아침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1등으로 등원 시키고 아파트 단지에 나가서 리플렛을 돌리고 눈에 보이는 상가마다 들어가서 애터미 제품과 나 임현정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어떤 일을 해도 하루 8시간은 일해야 월급이라는 것을 가져가는데 나는 애터미에서 빠르게 월 2백이라는 소득을 만들기 위해 하루 8시간을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의 배려, 아이들의 희생을 담보 삼아 하는 일이었기에 빠르게 오토판매사를 달성하는 것만이 그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1년 4개월만에 오토판매사에 입성했고 오토판매사 배지를 받았다.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과 상황들이 있었겠는가?
애터미 사업을 하기 전에는 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고 베푸는 삶이 아닌 모으는 삶을 살기 바빴고 남을 돌아보는 여유도 없었다. 애터미 사업을 하면서 나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바뀐 것이다. 내가 바뀌고 나니 이세상 모든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 안되는 일은 없구나! 정말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지는구나! 매일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이렇게 행복한 거구나 하고 말이다.
주위사람들의 반대, 따가운 시선들, 차가운 말 한마디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내가 애터미를 해야하는 이유가 명확했고 함께 나누고픈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를 믿고 함께 성공을 꿈꾸는 스폰서, 파트너들과 함께였기 때문이었다.
애터미를 만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나는, 오늘도 신나고 즐겁게 애터미와 워라밸 큐레이터 임현정을 알리러 나간다!
부모님께서는 늘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바르게 사셨다. 집이 너무 시골인지라 고등학교때부터 자취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내 스무 살 뒤에는 항상 존경하는 부모님이라는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9년 대학교에 입학했다. 전공은 기계설계였고 1학년 전체 여학생은 나를 포함한 단 6명뿐이었다. 그렇게 남자들 사이에서 경쟁하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부품 설계를 시작으로 기계 설계, 프레스 설계, 레이저 설계까지 약 10년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독립적인 생활을 했던 나는 막연하게 미래에 잘 살 수 있을 거란 내 안의 알 수 없는 확신과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무언가 이뤄낼 것 같던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남들과 비슷하게 평생을 함께할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으면서 경력이 단절되고 육아에 매진하게 되었다. 육아를 하면서도 미래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을 때쯤 우연하게 애터미를 만나게 되었다.
네트워크 제품은 사용해 본적도 없던 내게 애터미 제품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제품의 우수성을 알기보다 내가 쓸 수 있는 가격대인 것이 좋았기 때문이었고 우연히 간 세미나에서 보상 플랜을 처음 듣고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다단계의 고정관념을 깨어주었기 때문이다. 상한선이 있다는 것이 내게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상한선이 있다는 건 누구 한 사람만이 소득을 독식하지 않는다는 말이었고 일에 끝이 있기에 시간의 자유,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회사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서 합리적인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온갖 인터넷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하며 약 6개월 정도 검증의 시간을 거치면서 의심이 깨지고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 일을 제대로 한 번 해봐야겠다!”
어쩌면 이 일이 내 삶을 바꿔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 일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네트워크마케팅의 경험도 영업의 경험도 전혀 없던 나는 내가 직접 알아보고 검증한 회사, 제품, 경영자의 대한 믿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은 못해도 나는 무조건 이 사업을 성공해 내고야 말겠다는 열정 하나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약 10년 가까이 경기도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울산으로 내려온 나는 아는 지인이 열명도 채 되지 않았다. 어느 장사나 매출이 있어야 소득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데 나는 제품을 전달할 만한 지인이 없었다. 만날 사람이 없으니 매출도 없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목표가 있어야 성장한다는 성공자분들의 말씀을 듣고 방법을 생각했어야 했다.
“그래, 개척 영업을 해야겠구나.”
이른 아침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1등으로 등원 시키고 아파트 단지에 나가서 리플렛을 돌리고 눈에 보이는 상가마다 들어가서 애터미 제품과 나 임현정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어떤 일을 해도 하루 8시간은 일해야 월급이라는 것을 가져가는데 나는 애터미에서 빠르게 월 2백이라는 소득을 만들기 위해 하루 8시간을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의 배려, 아이들의 희생을 담보 삼아 하는 일이었기에 빠르게 오토판매사를 달성하는 것만이 그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1년 4개월만에 오토판매사에 입성했고 오토판매사 배지를 받았다.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과 상황들이 있었겠는가?
애터미 사업을 하기 전에는 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고 베푸는 삶이 아닌 모으는 삶을 살기 바빴고 남을 돌아보는 여유도 없었다. 애터미 사업을 하면서 나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바뀐 것이다. 내가 바뀌고 나니 이세상 모든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 안되는 일은 없구나! 정말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지는구나! 매일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이렇게 행복한 거구나 하고 말이다.
주위사람들의 반대, 따가운 시선들, 차가운 말 한마디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내가 애터미를 해야하는 이유가 명확했고 함께 나누고픈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를 믿고 함께 성공을 꿈꾸는 스폰서, 파트너들과 함께였기 때문이었다.
애터미를 만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나는, 오늘도 신나고 즐겁게 애터미와 워라밸 큐레이터 임현정을 알리러 나간다!
임현정 다이아몬드 마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