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족들의 지지가 내 사업의 원동력
가족들의 지지가 내 사업의 원동력
우연히 단골 닭강정집을 통해 알게 된 애터미. 애터미 제품을 사용해 보고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그렇게 열심히 달려온 지 어느새 6년 차가 되었다. 1년 동안은 소비자, 부업자로 내가 하는 일을 하면서 애터미 사업을 조금 더 깊게 알아보았고 1년 후 전업으로 애터미 사업을 시작했다. 시작할 때 누구나가 겪는 힘든 일 중 하나가 바로 가족의 반대일 것이다. 나 역시 처음 애터미 사업을 알아보겠다고 했을 때 남편은 물론 엄마와 아빠도 반대했다.
남편의 반대는 ‘당신이 세미나를 들어보고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면 그때는 생각해보겠다’고 하며 남편을 설득했고 남편은 굳이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었기 때문에 설득하고 지지를 받는 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열심히 지지해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엄청난 지지를 받으며 사업을 하고 있다. 엄마 역시도 딸이 하는 일을 믿어주라고 말씀드렸더니 나를 돕기 위해 애써주셨다. 아빠의 반대는 조금 내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잘모르니까 소중한 딸이 걱정되셔서 반대하실 뿐 언젠는 인정해 주실 것으로 생각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빠는 나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고 싫은 소리를 엄마를 통해 듣게 하셨다. 나한테 편히 하지 못 하는 말을 엄마에게는 아무렇게나 말씀하셨던 터라 엄마의 마음도 힘들게 하셨다.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냐.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자꾸 일하려고 하냐. 그냥 집에서 남서방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애들이나 잘 키우지 왜 그러냐.’ 그렇게 엄마를 통해 내가 듣기를 바라셨고 나에게 그런 말들은 정말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 중 하나였다.
엄마는 대전에서 김밥집을 작게 운영하고 계신다. 엄마는 나를 도와주신다고 제품을 사용해 보시기 시작했고 조금씩 김밥집에 오시는 손님들께 소개를 해보시겠다며 제품 카탈로그를 가게에 가져다 놓아 보라고 하셨다. 카탈로그와 칫솔, 치약만 챙겨서 엄마 가게 한쪽에 가져다 놓은 날, 아빠는 아주 부드러운 말투로 나에게 상처를 주셨다. “최 사장, 천안에서나 해.” 그걸 왜 여기다 가져다 놓냐며 아빠는 나와 엄마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셨다. 웃음으로 받아넘기며 나는 그 상황을 피하고자 애썼다. 그리고 그곳에 카탈로그와 제품 몇 가지를 진열해 두었다.나는 애터미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굴하지 않았다. 그저 언젠가 아빠가 알아주시겠지 그렇게 내 마음을 다지며 사업에 임했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대전에 엄마 김밥집에 갔을 때였다.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있던 애터미 카탈로그와 치약, 칫솔이 아빠가 직접 만들어 놓으신 멋진 선반 위에 올라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아빠가 만들어 놓으신 거라고 엄마한테 이야기를 전해 듣는데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빠가 조금씩 인정해주시고 있음을 나는 느꼈다. 하지만 그렇게 해줄 때도 아빠는 내가 주는 애터미 건강식품 대신 약국에서 파는 건강식품들을 사드셨다. 밀크씨슬, 루테인 등등 우리 애터미도 나온다고 말씀드려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약국에서 약사님이 추천해줬다는 약국 제품들을 드셨다. 괜찮다. 언젠가는 믿고 써주시겠지.. 그렇게 나는 사업을 열심히 해서 다이아몬드마스터가 되었다.
그리고 샤론 로즈마스터를 준비하기 전 오토판매사가 되면서 센터를준비하게 되었다. 애터미를 전업으로 진행하고 1년 6개월 만의 일이었다. 아빠를 찾아갔다. 센터를 오픈하게 되었는데 도와주십사 말씀드렸고 아빠는 못 이기는 센터 오픈을 도와주셨다. 그리고 6개월 뒤 나는 애터미 국장, 샤론로즈마스터가 되었다. 그런 과정들을 겪으며 아빠는 조금씩 내가 보내드리는 제품들을 드시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우리 딸이 애터미 국장이라고 자랑도 하시기 시작했으며 어느 날은 지인분들께 애터미 건강식품 오메가3, 루테인, 비타민, 견과류 등을 주문받아 주시면서 소비자 소개를 해주시기 시작하셨다.지난 명절에는 잘 아시는 사장님과 만난 후 사장님 모임 분들에게 명절 선물로 애터미 고등어를 주문받아 주셨다. 무려 고등어 매출만 150만 원가량이었다. 그리고 여쭤보신다. 그렇게 팔아주면 너 얼마나 버냐고 물어보신다. 아직 마케팅은 이해를 못 하셨다. 그래도 아빠가 나를 생각해주고 자랑할 수 있는 딸이 되어서 기쁘고, 감사했다. 하루는 전화로 이렇게 말씀하셨다.“최 국장님, 아빠 지금 계모임 있어서 가는데 회원님이 치약 가지고 오라고 해서 엄마 가게에 있던 거 가지고 가는 중이네.”아빠도 최 국장 밑으로 가입할까?이제는 가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사업하게 되어서 기쁘고 감사하다. 애터미를 열심히 또 꾸준히 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이제는 온 가족이 애터미를 인정해주고 도와주고 있어서 감사하다.
남편의 반대는 ‘당신이 세미나를 들어보고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면 그때는 생각해보겠다’고 하며 남편을 설득했고 남편은 굳이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었기 때문에 설득하고 지지를 받는 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열심히 지지해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엄청난 지지를 받으며 사업을 하고 있다. 엄마 역시도 딸이 하는 일을 믿어주라고 말씀드렸더니 나를 돕기 위해 애써주셨다. 아빠의 반대는 조금 내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잘모르니까 소중한 딸이 걱정되셔서 반대하실 뿐 언젠는 인정해 주실 것으로 생각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빠는 나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고 싫은 소리를 엄마를 통해 듣게 하셨다. 나한테 편히 하지 못 하는 말을 엄마에게는 아무렇게나 말씀하셨던 터라 엄마의 마음도 힘들게 하셨다.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냐.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자꾸 일하려고 하냐. 그냥 집에서 남서방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애들이나 잘 키우지 왜 그러냐.’ 그렇게 엄마를 통해 내가 듣기를 바라셨고 나에게 그런 말들은 정말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 중 하나였다.
엄마는 대전에서 김밥집을 작게 운영하고 계신다. 엄마는 나를 도와주신다고 제품을 사용해 보시기 시작했고 조금씩 김밥집에 오시는 손님들께 소개를 해보시겠다며 제품 카탈로그를 가게에 가져다 놓아 보라고 하셨다. 카탈로그와 칫솔, 치약만 챙겨서 엄마 가게 한쪽에 가져다 놓은 날, 아빠는 아주 부드러운 말투로 나에게 상처를 주셨다. “최 사장, 천안에서나 해.” 그걸 왜 여기다 가져다 놓냐며 아빠는 나와 엄마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셨다. 웃음으로 받아넘기며 나는 그 상황을 피하고자 애썼다. 그리고 그곳에 카탈로그와 제품 몇 가지를 진열해 두었다.나는 애터미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굴하지 않았다. 그저 언젠가 아빠가 알아주시겠지 그렇게 내 마음을 다지며 사업에 임했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대전에 엄마 김밥집에 갔을 때였다.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있던 애터미 카탈로그와 치약, 칫솔이 아빠가 직접 만들어 놓으신 멋진 선반 위에 올라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아빠가 만들어 놓으신 거라고 엄마한테 이야기를 전해 듣는데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빠가 조금씩 인정해주시고 있음을 나는 느꼈다. 하지만 그렇게 해줄 때도 아빠는 내가 주는 애터미 건강식품 대신 약국에서 파는 건강식품들을 사드셨다. 밀크씨슬, 루테인 등등 우리 애터미도 나온다고 말씀드려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약국에서 약사님이 추천해줬다는 약국 제품들을 드셨다. 괜찮다. 언젠가는 믿고 써주시겠지.. 그렇게 나는 사업을 열심히 해서 다이아몬드마스터가 되었다.
그리고 샤론 로즈마스터를 준비하기 전 오토판매사가 되면서 센터를준비하게 되었다. 애터미를 전업으로 진행하고 1년 6개월 만의 일이었다. 아빠를 찾아갔다. 센터를 오픈하게 되었는데 도와주십사 말씀드렸고 아빠는 못 이기는 센터 오픈을 도와주셨다. 그리고 6개월 뒤 나는 애터미 국장, 샤론로즈마스터가 되었다. 그런 과정들을 겪으며 아빠는 조금씩 내가 보내드리는 제품들을 드시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우리 딸이 애터미 국장이라고 자랑도 하시기 시작했으며 어느 날은 지인분들께 애터미 건강식품 오메가3, 루테인, 비타민, 견과류 등을 주문받아 주시면서 소비자 소개를 해주시기 시작하셨다.지난 명절에는 잘 아시는 사장님과 만난 후 사장님 모임 분들에게 명절 선물로 애터미 고등어를 주문받아 주셨다. 무려 고등어 매출만 150만 원가량이었다. 그리고 여쭤보신다. 그렇게 팔아주면 너 얼마나 버냐고 물어보신다. 아직 마케팅은 이해를 못 하셨다. 그래도 아빠가 나를 생각해주고 자랑할 수 있는 딸이 되어서 기쁘고, 감사했다. 하루는 전화로 이렇게 말씀하셨다.“최 국장님, 아빠 지금 계모임 있어서 가는데 회원님이 치약 가지고 오라고 해서 엄마 가게에 있던 거 가지고 가는 중이네.”아빠도 최 국장 밑으로 가입할까?이제는 가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사업하게 되어서 기쁘고 감사하다. 애터미를 열심히 또 꾸준히 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이제는 온 가족이 애터미를 인정해주고 도와주고 있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