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애터미의 어제와 오늘을 만나다
애터미의
어제와 오늘을
만나다
애터미 방송 시스템의 산증인
영상팀 김태원 이사
뼈터미라는 말이 있다. ‘뼛속부터 애터미’의 줄임말로 애터미 본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중 애터미의 정신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중 원조 ‘뼈터미’라 불리는 김태원 이사를 통해 애터미의 어제와 오늘, 미래를 만나보았다.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겠구나"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겠구나.’ 2009년 열 명 남짓한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애터미의 작은 사무실을 찾은 김태원 이사가 받은 첫 느낌이었다. 15년간 사내 영상 촬영과 편집으로 업을 이어가고 있던 그는 박한길 회장과는 예전에 잠시 같은 회사에서 일해 본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당시 그는 말단 직원이었고 박한길 회장은 간부급 직원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인연이랄 것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운명 같아요. 함께 근무한 것은잠깐이었는데 회장님께 제 연락처가 있었다는 게….”
"김태원 이사가
생각하는
애터미 명장면 2가지"
원칙중심 퍼포먼스
“구매와 소비를 장려하는 다른 회사와는 다르구나, 라는 느낌을 받으며 오래 갈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싱가포르 오픈식
“자체 제작한 오픈 영상을 상영한 뒤 쏟아졌던 박수와 함성을 보며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영상 콘텐츠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죠.”
생각을 경영하여 완성한 다원중계
처음 참석한 석세스아카데미에는 약 800명의 회원이 참석해 있었다. 한 대 뿐인 카메라로 강의 촬영에 열의를 올리던 사람과 강의 자료를 컨트롤 하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김태원 이사는 당연히 그들을 직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두 사람 모두 회원이었다. 남다른 애사심을 가진 회원들, 1박 2일에 걸친박한길 회장의 열정적인 직강, 화려한 승급식 등 특이문화가 없는 네트워크 회사, 이 모든 것들은 김태원 이사로 하여금 애터미의 성공을 예감하게 했다.
“그 당시 회장님은 모든 일정을 직강으로 소화하셨어요. 대단하다 싶었죠. 회원들의 살아있는 눈빛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후 김태원 이사는 애터미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송 시스템을 구축하고 영상을 제작하는 일에 몰두했다. 수도 없이 박한길 회장의 강의를 들었고 세미나장을 찾았다. 고민의 시작도 해답도 그곳에서 찾았다. 속리산을 찾은 회원이 2,500명에 이르자 타 지역에서도 석세스아카데미를 진행해야 했다. 속리산에서 경주 더케이 호텔까지 거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영상이 끊어지지 않도록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당시 속리산에서도 여러 강의실에 영상을 송출하는 방송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었지만 강의실 간 거리는 아주 가까웠다. 반면, 타 지역으로 영상을 보내는 일은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김 이사는 평소 언젠가 다른 곳에서도 석세스아카데미를 개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방송 장비와 관련된 국내외 전시회에 참석하며 정보를 쌓아 두고 있었다. 수십 차례에 걸친 장비 테스트를 거쳐 최종적으로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불안함이 없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는 테스트에 매달렸다.
2013년 7월 경주 더케이 호텔, 자신감과 불안감이 교차한 첫 번째 다원중계는 성공적이었다.애터미에 입사한 이래 제일 힘들었지만 보람을 느낀 날이기도 했다. 이후 수원, 변산, 홍천, 경주 코모도 호텔, 서울까지 차례로 석세스아카데미가 오픈됐다. 세미나장은 1곳에서 7곳으로,800명의 회원은 1만 5천 명으로 늘어났다.
“그 당시 회장님은 모든 일정을 직강으로 소화하셨어요. 대단하다 싶었죠. 회원들의 살아있는 눈빛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후 김태원 이사는 애터미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송 시스템을 구축하고 영상을 제작하는 일에 몰두했다. 수도 없이 박한길 회장의 강의를 들었고 세미나장을 찾았다. 고민의 시작도 해답도 그곳에서 찾았다. 속리산을 찾은 회원이 2,500명에 이르자 타 지역에서도 석세스아카데미를 진행해야 했다. 속리산에서 경주 더케이 호텔까지 거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영상이 끊어지지 않도록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당시 속리산에서도 여러 강의실에 영상을 송출하는 방송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었지만 강의실 간 거리는 아주 가까웠다. 반면, 타 지역으로 영상을 보내는 일은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김 이사는 평소 언젠가 다른 곳에서도 석세스아카데미를 개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방송 장비와 관련된 국내외 전시회에 참석하며 정보를 쌓아 두고 있었다. 수십 차례에 걸친 장비 테스트를 거쳐 최종적으로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불안함이 없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는 테스트에 매달렸다.
2013년 7월 경주 더케이 호텔, 자신감과 불안감이 교차한 첫 번째 다원중계는 성공적이었다.애터미에 입사한 이래 제일 힘들었지만 보람을 느낀 날이기도 했다. 이후 수원, 변산, 홍천, 경주 코모도 호텔, 서울까지 차례로 석세스아카데미가 오픈됐다. 세미나장은 1곳에서 7곳으로,800명의 회원은 1만 5천 명으로 늘어났다.
타 기업과는 다른 개념 설계와 축적의 힘
원데이·지역·부업가 세미나가 생기며 애터미 세미나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김태원 이사 한 명뿐이었던 영상팀 직원은 13명으로 늘어났고 1대로 시작한 카메라는 14대가 되었다.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40대다. 김태원 이사는 애터미의 성장 비결로 타 기업과는 다른 개념 설계와 축적의 힘을 꼽는다. “애터미는 다른 네트워크 회사와는 다릅니다. 그게 성장의 비결인 것 같습니다. 절대품질 절대가격도 그렇고 회사가 세미나를 주관한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회원들의 사업비용도 줄여주며 효율적인 사업을 가능하게 한 거죠. 다원중계도 그동안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험치가 쌓였고 그렇게 축적된 힘으로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I Have a Dream
김태원 이사는 애터미의 절대품질 절대가격을 방송 시스템에도 적용하고 있다. “가성비를 생각했을 때 어떤 것이 가장 적절할지 생각합니다. 또한 새로운 장비와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입니다.” 회원 스스로 할 수 있는 사업도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그는 다원중계뿐만 아니라 회원들이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힘을 쏟고 있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 중에 ‘I Have a Dream’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좋아하는데요. 직장생활 29년 중 네트워크 회사에서만 18년, 그중 애터미에서 9년을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네트워크 회사가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애터미의 좋은 문화를 전파해서 자랑스러운 네트워크 문화를 일궈나가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그게 저의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