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애터미 덕분에 처음 한국 땅 밟아”
“애터미 덕분에 처음 한국 땅 밟아”
탈북자 출신으로 호주에서 애터미 시작, ‘샤론로즈마스터 스카이 킴’
스카이 킴 샤론로즈마스터는 탈북주민이다. 하지만 탈북 과정에서의 여러 상황 속에서 한국 대신 제3국을 택하게 됐다. 호주에
살면서 애터미를 만났고, 그 덕분에 그토록 원했던 한국에 올 수 있게 됐다. 벌써 북한을 떠난 지 15년이 다 되어 가지만, 한국
땅을 밟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살면서 애터미를 만났고, 그 덕분에 그토록 원했던 한국에 올 수 있게 됐다. 벌써 북한을 떠난 지 15년이 다 되어 가지만, 한국
땅을 밟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간호사로 일하다 돈 벌기 위해 중국행
스카이킴 샤론로즈마스터는 북한에서 간호사로 일 했다. 북한에서도 나름 인정받는 전문직이었지만 하루 종일 일해도 돈 한 푼 받을 수 없는 삶이었다. 외동딸로 부모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지만 굶는 것이 일상이었다. “중국에 가면 간호사들은 대우도 받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대.” 누군가의 이 말 한 마디에 그녀는 마음이 흔들렸다. 탈북을 한다거나 한국으로 가겠다는 생각은 없었 다. 오로지 돈을 벌어서 지금의 지긋지긋한 배고픔 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드디어 2008년 말,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들어왔지만 막상 와보니 상황은 생 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신분도 없는 탈북자 를 써줄 병원이 있을 리 만무했다. 취업은 고사하고 들키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북송을 당할 위험이 있었다. 그녀는 몇 달간 숨어 지내며 식당 등에서 근근이 일하다 우연히 알게 된 한국 선교사를 통해 한국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당시의 여러 사정 때문 에 한국행을 포기하고 해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 후 호주에 정착했고, 거기서 애터미를 만났다.
우연히 전달받은 ‘헤모힘’에서 사업이 시작되다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생활하다보니 적 응이 더욱 어려웠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청소나 식당일 뿐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길에서 애 터미 전단지를 하나 받게 된다. 전단지를 보자마자 ‘다단계’라는 말에 다시는 읽어보지 않으려 했다. 호주에 처음 왔을 때 다른 다단계 회사에 가입해서 쓴 맛을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사용해보라고준 제품도 열어보지도 않은 채 던져두었다. 호주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생활에 안정을 찾을 즈음,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그녀의 인생에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남편을 돌보느라 일을 제대로 못 하게 되니 생활은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집세가 6개월 밀리자 법원에서 문서가 날아왔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 았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당황스러워할 때, 딱한 사정을 알고 스폰서가 여러 모로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아픈 남편을 위해 ‘헤모힘’도 권해주었다. 남편은 ‘헤모힘’을 꾸준히 먹으면서 몸이 눈에 띄게 좋 아졌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권했더니 반응이 괜찮았다. 그렇게 하나 둘 주변 사람들에게 상품을 전달하고 나니 통장으로 조금씩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적은 돈이지 만 신기했다. 이후 그녀는 청소 일을 줄이면서 애터미 일을 늘려나갔 다. 거리로 나가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오래 전에 이민 온 교포들의 경우 다단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북한 사투리도 문제였다. 말투 때문에 조선족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북한에서 왔 다고 하면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북한에서 태어난 게 저의 죄는 아니잖아요. 제 마음대 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과 싸우기도 했지만, 이내 부질없 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애터미를 하면서 인생 공부, 인 문학 공부를 한 덕분이다. 그녀는 스스로 달라지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세금 신고를 하다
애터미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코로나 대 유행의 막이 오르던 2020년 3월이었다. 화상회의를 통 해서 밖에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미팅과 세미 나에 한 번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참여했다. 세 미나에서 ‘영혼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가슴이 벅찼다. 박한길 회장의 창업 스토리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며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청소 일을 할 때는 1년 일해도 월급 10달러 오르기도 힘 들었지만 애터미는 달랐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매달 들 어오는 돈이 쑥쑥 늘어났다. 밤을 새면서 일을 해도 즐 겁고 행복했다. 애터미를 시작한지 11개월 만에 고대하 던 첫 파트너가 나왔고, 1년 3개월 만에 다이아몬드마스 터가 되는 꿈같은 일도 일어났다. 스카이킴 샤론로즈마스터는 지난해 수입이 늘어나면서 처음으로 세금 신고도 하게 됐다. 일용직으로 일할 때도 받는 돈에서 원천징수로 내는 세금은 있었지만, 이렇게 자신의 소득에 대해서 신고를 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경 험은 처음이다. 금전적인 부담이 있었지만 세금을 내야 한다는 그 말에 오히려 감동을 받아 울컥했다. 탈북자 출신으로 늘 정부의 지원금이나 후원금 같은 것을 받으 며, 남들이 내는 세금으로 도움을 받고 살았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세금을 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감정이 벅차 올랐기 때문이다. 박한길 회장이 강연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내는 사람 이 되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 말뜻을 제대로 이 해하지 못했는데, 그제야 실감이 났다. 스카이 킴 샤론로즈마스터는 한국 출장에 이어 바로 몽 골로 떠났다. 호주에서 줌을 통해 알게 된 첫 몽골 파트 너를 만나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몽골에 도착하자 마자 전단지를 돌리며 영업에 나섰다. 그녀는 지금 몸뚱이 하나 씻을 물도 없이 살아왔던 자신 의 인생을 떠올리며,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우물을 파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 어떤 것보다도 꼭 이 루고 싶은 꿈이다. 단기적으로는 2024년 내에 스타마스 터로 리더스 클럽에 입성하기 위한 도전에 나서고 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북한에서도 센터를 세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면서 말이다.
스카이킴 샤론로즈마스터와 애터미 호주회원들